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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이재용 사면, 정경유착 단절 믿음 줘야 가능 - 매일경제

'국정농단' 사건 등에 연루돼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특별사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언급을 했다. 문 대통령은 2일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 대표들과 청와대에서 한 오찬 자리에서 참석 기업인들로부터 이 부회장의 사면 건의를 받고 "고충을 이해한다.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고 청와대가 전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 경제 상황이 이전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고, 기업의 대담한 역할이 요구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말한 '국민 공감' 부분에 대해 "'사면에 공감한다'는 것이 아니라 두루두루 의견을 듣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보면 이날의 발언이 이 부회장 사면에 관해 지금까지 문 대통령이 한 말 가운데 가장 적극적이라고 보는 데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최근 몇 달간 이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각계의 건의가 빗발쳤고 문 대통령도 기자 회견 등에서 이에 관한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으나 분명한 의사 표시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난 5월 10일 취임 4주년에 즈음한 특별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판단하겠다"고 말하는 등 "검토 계획이 없다"던 종전의 완고한 입장에서 물러설 가능성을 내비치기는 했다.

이러한 변화를 불러온 주된 동인은 문 대통령도 언급한 '국민 공감'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계에서 학계·종교계·지역 단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각계각층에서 쏟아진 사면 건의는 차치하고라도 국민 여론도 이 부회장 사면에 우호적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달 10∼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1천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부회장의 사면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4%로 '반대'(27%)의 두 배가 넘었다. 최근 세계 반도체 산업에 몰아닥친 격랑이 이 부회장의 빈 자리를 더 두드러져 보이게 한 측면도 있다. 국가전략산업인 반도체의 패권 회복을 최우선 국가과제로 설정한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세계 주요 업체들을 불러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방침을 논의하는 자리에도,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삼성을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무려 44조 원에 이르는 대미 투자계획을 밝히는 자리에도 삼성에서는 전문경영인인 김기남 부회장이 구속 중인 이 부회장 대신 참석해야 했다. 경쟁사인 대만 TSMC가 미국의 공급망 재편 계획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막대한 현지 투자 계획을 서슴없이 구체화해 가는 동안 삼성은 아직 미국 현지 공장입지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TSMC의 시장점유율과 시가총액 등은 일취월장하는 것과 반대로 삼성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업 총수의 부재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여러 여건이 이 부회장의 사면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것은 맞지만, 넘어야 할 벽 또한 만만찮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이나 경영권 승계 과정과 관련된 뇌물공여, 분식회계, 배임 등 여러 혐의로 유죄가 선고됐거나 재판을 받고 있다. 하나 같이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뒤흔들고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심각한 사안들이어서 간단히 용서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날 이 부회장 사면 반대 집회를 가진 시민단체들이 주장한 것처럼 "국민 통합과 인권 증진을 위해 시행돼야 할 사면·가석방이 경제적 투자의 정치적 대가나 경제 논리로 환원돼 재벌의 기업 범죄 정당화에 악용되면 안 된다"는 논리에는 반박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결국 관건은 삼성과 이 부회장의 변화 노력이다. 지금까지 많은 다짐이 있었지만, 다시는 정경유착의 음습한 구태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결의와 이를 뒷받침할 실질적인 조처들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어떻게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지에 관한 비전을 보여준다면 사면에 회의적이던 국민 가운데 상당수를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결단을 기다리는 것은 그다음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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